
손노인
그 분은 대광사에서 잔일을 하시며 말년을 보낸 분이다.
대나무 잔가지를 잘라서 쪼개진 사이에 버려진 도루코 면도날을 끼워 날이 무디어져 잘 들지도 않는 날에 피부를 베어 피를 흘리면서도 돈 아끼기 위해 늘 그렇게 면도를 하시었다.
왜인들이 나라를 식민지배할 때 철도공무원으로 꽤나 거들먹거렸다는 자랑도 같지도 않은 자랑을 간간히 하시던 순하디 순한 분이었다.
그 때 돈 깨나 만질 수 있어서 논도 집도 괜찮게 지니고 살았단다. 그래서 본 부인 좇아내고 둘째 부인 들여 첫째 부인에게 못할 짓하여 늘 원망 들으며 그 아들에게 매양 시달리며 살았다 했다.직업 없고 살 곳 없던 첫 부인 아들이 찾아와 노상 괴롭히곤 하더니 그 아들 느닷없이 노인 방에서 죽어서 하필 초파일날 초상 치느라 혼이 빠진 적이 있기도 했다.
어느 해 나들이 한 번 못하고 지내는 것이 안쓰러워 법당일 하던 목수들 따라 나들이 시켜드렸더니 그 연세 높으신 나이로 종일을 관광버스 음악 따라 잠시도 쉬지 않고 춤을 추시었다. 모두 걱정되어 그만 쉬시라고 말려도 듣지 않으셨다.그 분도 가시고 그분을 아주뱀이라 부르던 대덕화도 가시고 그 분을 떠올릴 주변 아무도 없는 사십년이 훌쩍 지난 어느 날 문득 그 분 족하라는 분이 설담원을 찾아와 까맣게 잊고 있던 그 분을 생각하게 한다.
아무 기억해야 할 중요한 업적 하나 없는 분이지만 그리 순하디 순한 심성은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그 어른 이름보다 먼저 떠오른다. 세상에 좋은 기억을 남기는 것은 매우 소중한 일이다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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