설담원 이야기

,대덕화

단풍 | 2017.12.09 16:32 | 조회 479

대덕화

그다지 신심 깊으신 분은 아니었는데 어느 해부턴가 신심을 내시더니 아예 절에서 게시며 살림을 맡아 하시기 시작했다.

아들 딸 며느리 모두 잘 살고 있고 손자들도 남부럽지 않은 유복한 가정을 가지셨으며. 남편은 그리 멀지 않은 전 일에 사별하신 단출한 몸이라서

절살림 맡으시게 알맞기도 하셨다. 성격이 매우 적극적인 분이라서 가능하기 했었다.

그 분의 강한 결기는 아무도 따를 수 없었다. 매일을 버스로 시내에서 대광사를 오르내리며 칠십을 훌쩍 넘긴 연세에도 아무 거침없이 공양물 반찬꺼리 등을 사다 나르며 그 때의 그 많은 불사의 원주 일을 차질없이 해 내셨다.

하루에도 몇 차례씩 법당을 오르내리며 공양물 차리기를 오직 혼자 감당하셨고 누구의 도움도 구하지 않았다.

강단이 강하기로 유명한 분이라서 남이 따를 수 없는 일화를 여러 차례 남기기도 하셨다. 담배를 하루 한갑 이상 피우시는 골초였지만 어느 해 정초기도 시작하며 단번에 끊고 다시는 피우지 않았다.

이백을 오르내리는 고혈압이라서 약을 보통 사람의 몇 배를 잡수셨지만 그도 그 해의 기도에 함께 끊으며 다시는 약을 먹지 않았다. 혈압은 정상이었고 다시는 혈압으로 인한 불편을 격지 않으셨다.

강한 결기와 굳은 신념과 확고한 믿음이 과학을 뛰어넘는 가피의 기적을 만들어내신 신앙의 살아있는 증인이셨다.

어느 날 법당에서 과일을 차리다가 앉은 채로 고개를 푹 떨구고 돌아가시는 어느 수행 깊은 스님도 이루기 어려운 좌탈입망을 이루신 분이기에 그 분 깊은 신심의 기적을 나는 믿지 않을 수가 없다.

스님 가시는 길은 지옥에라도 가겠다.” 시며 가시는 길의 돌부리 하나하나도 뽑아주고 싶다.”고 하실 정도로 유난히 날 아끼고 사랑하여 주시어 더러는 미안하기도 했던 분이다. 나도 이제는 그 분 가시던 칠십 줄 고개를 넘어가는 그분 같은 하얀 머리를 휘날리는 처지가 되었다. 홀연 생각하면 알뜰하신 보살핌 주신 많은 분들 정을 다 갚지도 못하고 떠나게 되지나 않을지 늘 노심초사다. 글 한 자라도 힘을 다해 쓰리라. 책 한권이라도 기운 쏟아 보리라. 말씀 한 마디라도 정성 다해 전하리라. 다만 그로라도 입은 은혜 갚으리라.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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